Menu

Posts List

2014. 6. 23.

거짓 교사들을 주의하라는 베드로의 경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속박, 죽음의 두려움, 그리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벗어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은혜라는 개인적 측면과,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걷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양 방면이 있습니다.

저 유명한 시편 23편에서도 다윗은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행로들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베드로 후서는 이러한 구원이 얼마나 놀랍고 보배로운 것인지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며, 그러한 참된 진리 위에 확고히 서라고 당부하면서 이러한 진리는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확실한 성경 기록에 따른 것임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를 훼방하기 위해, 때로는 교회 안에서 또는 교회 밖으로부터 교회 안으로 몰래 들여와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는 거짓 교사들을 주의하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복된 소망인 재림 약속을 조롱하며 부인하는 자들의 거짓 교리에 주의하고, 진리에 대한 순수함을 지키고 진리에 굳게 서서 마침내 주님 오실 때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화평 중에" 주님을 만나도록 권고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얻은 믿음을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 믿음은 우리가 구원 받을 때, 주님이 주신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얻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나온 것이기에 보배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1).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아 갈 수록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넘치게 됩니다(2).

이러한 구원으로의 부르심은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셨고, 이러한 구원으로 초청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곧 경건, 하나님 다움)에 속한 모든 것들을 주셨습니다(3).

이러한 기초 위에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게 주어졌습니다. 이 보배로운 약속들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복된 소망이요, 그 때 우리의 썩어질 몸이 주와 같이 변형될 것이요, 이 땅에 세워질 천년 왕국에서 주님과 통치하는 것이요, 주와 영원히 함께 한다는 보배로운 약속들입니다. 이외에도, 성도들에게 주어질 상급,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사람들에 대환란, 백보좌 심판 등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힘입을 때 우리는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과 이 약속들이 마음 중심에 깊이 세겨져 있다면, 우리는 모세처럼 애굽 궁전의 삶(=세상 즐거움과 짝하는 삶)을 거절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고난 받기를 기뻐할 것입니다(4).


계속해서, 베드로는 이러한 신앙의 기초 위에  그리스도인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 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5 이것과 더불어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의 친절을, 형제의 친절에 사랑을 더하라.

이러한 신앙의 기초에 열심을 다하여, , 우리의 자유의지를 드려 믿음 위에 덕을, 덕에 지식, 지식 위에 절제를 쌓으라고 합니다. 000 선교회는 지나치게 믿음만 강조합니다. 그 믿음은 참된 지식 안에서 제한되어야 합니다. , 믿음이란 말을 붙여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을 미화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이 미천하여, 은사주의자들처럼 이득이 경건인 것처럼 가르칩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말씀 증거의 목적이외로 표적이나 이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말씀의 지식 안에서 그 능력을 제한 하셨습니다.

이 지식 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절제입니다. 지식은 자칫 우쭐대고 교만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신앙은 믿음 하나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성품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성품들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성품들을 옛본성이 거스리기 때문에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 , 지식, 절제, 인내, 경건, 친절, 사랑, 이런 것들이 풍성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됩니다(7).
이런 것들이 없는 자는 눈 먼 자요, 멀리 볼 수 없고, 자신들이 깨끗하게 된 것을 잊은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9).

주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신 것에 확고히 서고, 그 위에 열심을 내어 믿음에서 자랄 때 넘어지지 않게 됩니다(10).

베드로는 죽음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이러한 기초 원리들을 성도들에게 기억하라고 간곡히 부탁하며, 또한 자신이 떠난 뒤에도 이러한 것들을 기억하여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당부합니다.(12~15)

베드로가 말한 지금까지의 기초 교리들은 사사로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며,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도들이 직접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함께한 증인들이 허다하게 많지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성경 기록이 명백한 증거라고 이야기 합니다(16~21).

베드로는 심지어 변형산(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영광도 미리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도 생생하게 들었기에 자신이 본 것과 들은 것으로 증거를 삼을 수 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말씀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것들로 자신을 세워 자신을 따르라고 가르치지 않고, 오직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주목하게 합니다. 0쁜00 선0회 수장처럼 검증도 안된 간증, 꾸며낸 간증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자인 것처럼 속여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담이나 간증을 듣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1장에서는 우리의 구원이 어떠한 것인지, 주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놀랍고 고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 믿음을 지키고 바른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항상 기억하라고 당부합니다.
 

이제 2장에서는 이런 신자들이 바른 신앙과 하나님을 믿는 것을 못 견디는 마귀가 세운 거짓 교사들이 어떻게 교회와 성도들을 노략질할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거짓 대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끊임없이 존재해왔던 것처럼, 이제 너희 가운데에서도 거짓 교사들이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2 1). 여기서 베드로는 거짓 대언자와 거짓 교사를 대비시킵니다. , 오늘날에는 대언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있을 뿐입니다. 자칭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다든지, 이 시대의 재림 예수라든지 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 교사이며 이단의 괴수일 뿐입니다. 특히, 이들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을 세웠다는 말을 하면서 구약의 신정 국가 형태를 지금의 교회 시대에 적용하는데, 이는 성경에 대한 무지이며 자신의 욕망(교회를 지배할려는 탐욕)을 교묘히 교회안에 가져온 거짓 교리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단 교리를 몰래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 하게, 때로는 그러한 교리를 가져오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 속아서 이단 교리인지도 모르고 가져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속는 것은 영적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이단을 왜 주의하고 극도로 경계해야 합니까?

거짓 장사꾼에게 속아서 가짜 물건을 사면 화가 나지만 다시 정상적인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속아서 결혼하면 인생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에게 속으면, 영원한 멸망에 이르며, 영원한 상속을 빼앗기게 됩니다. 거짓 교사에게 속아 영적인 것을 상실하면 이 땅에서의 물질적 손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잃게 되기 때문에 거짓 교리와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고 무조건 믿지 말고 정말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 확인 또 확인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그분께 배웠으나, 그러한 가시적인 것보다도 더 확실한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을 붙들고 있음(벧후2:19)을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독한 길을 따를 것이라고 하는 베드로의 예언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거짓교리에 속고 있습니다. 신천지, JMS 등과 정죄 받을 이단 뿐만 아니라, 자칭 복음을 가진 무리라고 하는 오늘날의 구원파, 타락한 교회들을 통해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거짓된 말들을 참인 것처렴 속여 사람들을 상품 취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벧후2:3).
이단들의 특징 중 하나는 교회안에 사업을 들여 오는 것입니다. 어떤 단체는 신협을 운영하여 교인들이 작정헌금을 못 낼때 대출해 주고 이 때 교인들이 맞보증을 하게 하여 교인들의 이탈을 방지하려고 합니다. 어떤 단체는 모든 생물학자들이 실패한 텍솔 배양에 성공하여 에이즈와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비싼 값에 제품을 판매하더니 나중에 알려지기로는 텍솔은 없고, 산삼 배양근이 들어 있다는 황당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신앙촌, 오대양, 다판다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교회안에 사업이 들어와야 합니까? 왜 대형 예배당을 지어야 합니까? 이는 그 단체들을 지배하는 지도자들의 탐욕 때문입니다. 결국, 그 단체의 교인들은 이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상품 취급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본인들은 복음을 위한다고 스스로 속아서 자신들의 상과 주님이 주신 영광을 모두 빼앗겨 결국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고 맙니다.

벧후2:2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독한 길들을 따를 터인즉 그들로 인해 진리의 길이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욕으로 말미암아 거짓된 말들을 가지고 너희를 상품 취급하리니 그들에 대한 심판은 오래되어 이제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이 받을 정죄는 잠자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이러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당장 내리지 않는다고 하여 그 심판이 영원히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자유를 약속하지만 자신들은 부패의 종이 되었고 사람이 누구에게 정복되면 그 사람에게 속박되어 버립니다(2:19).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단체의 종입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을 구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예수 그리스도 보다 비중이 높아져 있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예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끝으로, 3장에서 베드로는 "17 너희가 이런 것들을 미리 알았은즉 그 사악한 자들의 오류에 이끌려 너희도 너희 자신의 굳건함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8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라고 권면합니다.

그럴사하게 갖다 붙이는 마음의 세계도 아니고 종의 세계도 아니고 종교 통합도 아니고 긍적의 사고를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아무도 우리의 상급을 빼앗지 못 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