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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7.

천국의 신비(1) - 마태복음 13장


마태복음 13장을 읽을 때마다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습니다(물론 지금도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왕국(=천국)을 비유를 들어 신비의 형태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내용을 가지고 설교 주제를 삼고 있으며, 이단들도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주 도용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은 신비스러워서 많은 경우 설교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식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자의적으로 인용하기 보다는 마태복음 전체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흐름과 대치되지 않도록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도 여러 책들을 대하면서 개략적으로나마 그 내용을 성경 전체의 흐름에 맞게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글로 옮겨 적으려고 하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제게 허락된 만큼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본 블로그에서도 짧게 소개했듯이, 하늘의 왕국(=천국), 하나님의 왕국, 하늘 왕국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늘의 왕국이란 단어는 마태복음에만 등장하며, 눈에 보이는 물리적 왕국을 의미합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으니 당연히 왕께서 통치하시는 왕국도 이 땅에 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왕국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을 통해 이어져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셨으며 지금은 버려진 상태이나 앞으로 그러한 시대가 다시 올 것입니다. 그들의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말미 암아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시대에 기록된 에스라, 느혜미야, 다니엘 등의 주요한 주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왕국을 영원히 세우는 것입니다. 이 왕국은 천년 왕국때 분명히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다시 세워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보좌는 현재 이 땅을 떠나 있습니다.

다니엘 2:44 이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한 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것은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이다. 그 왕국은 다른 백성에게 남겨지지 아니하며 이 모든 왕국들을 산산조각 내어 소멸시키고 영원히 서리이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통해 이 왕국의 흥망성쇠를 나타냈지만, 궁극적으로 세워질 최종 왕국의 특징을 정확히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성경 여러 곳을 통해 천년왕국의 모습을 제시하셨기 때문에 왕국의 모습이 어떠한지 어떻게 통치될지는 알려 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왕국을 반드시 이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구약에서 나타난 신정 왕국은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을 거쳐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다니엘서 등 여러 구약 성경에 나타나있습니다. 이 왕국은 바빌론 포로시대까지 다윗, 솔로몬을 거쳐 그 후손들에게 이어졌으며,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땅의 통치가 이방인에게로 넘겨지게 됩니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 첫번째 통치자였고, 최고의 모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권력과 통치와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영광스러운 군대가 요단강을 건너갈 때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은 거두셨습니다. 이방 제국은 바빌론, 페르시아(메대-바사),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결코 쇠하지 않는 하나의 왕국을 세우시는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세우실 천년왕국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이방인 통치자들 역시 자신들에게 준 권세를 악용했습니다. 이들은 짐승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더욱 악해지고 하나님의 길로 결코 돌아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랜 침묵이 지나고, 광야에서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고된 분이 오셨습니다. 하늘의 왕국(=천국)이 선포되었고, 표적과 권능이 왕으로부터 나타났으며, 이 땅에 왕이 오심으로 왕국이 세워질 준비가 되었습니다. 왕국의 헌법(마태5)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왕도, 헌법도, 왕국도 준비되었으나, 왕국의 백성들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뚜렷한 왕의 권능과 표적, 말씀, 명백한 증거들이 나타날 때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거절 당하셨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가운데 찾아 볼 수 없는 귀한 믿음은 이방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마태8:8~10). 그리하여, “마태8:11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하늘의 왕국에서 앉으려니와 12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날 것이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주님은 선언하십니다.
왕께서 거절되는 모든 장면들을 찾아 볼 필요는 있으나, 한 곳만 찾는 다면, 마태복음 12장에서 그 절정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아 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말미암는 왕의 위대한 역사들을 바알세붑의 것으로 돌리는 씻지 못할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육신 하신 예수님과 성령의 권능으로 자신들을 돌아 보는 기적들을 바알세붑의 힘을 빌어 그런 일들을 한다는 식으로 성령님을 훼방한 죄입니다. 이제 왕국은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게 되었고, 누구든지 이 왕국에 들어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유대인이 예수님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그 하늘의 왕국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신비의 형태로 감춰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마태복음13장은 현재 왕께서 거절당하시고 멀리 떠나 있는 상태에서 나타날 외형적 왕국의 모습, 이 왕국이 어떻게 형성되고 존재하며 마지막 때에 완전히 세워질 때까지 신비의 형태로 감춰지게 됩니다.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하늘의 왕국의 비밀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 비밀은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은밀히 간직된 것들(13:35)입니다.

왕국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셋째 하늘에 있는 하늘왕국을 제외하면, 두 가지의 형태입니다. 하늘의 왕국으로 아직 권능 가운데 설립되지는 않았고, 13, 20, 21장 등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사람의 손에 맡겨진 상태입니다. , 이 땅에 임해 있는 비밀스런 형태로 사람의 손에 맡겨짐으로 왕국의 통치가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때론 무질서하기도 하고, 심지어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개입으로 부패하기도 합니다. 왕께서 권능으로 다시 오셔서 모든 대적과 악을 뽑아 정화시킬 때까지 완전한 왕국이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듭남(=성령 침례)을 통해서만 들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본 글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이 아닌 하늘의 왕국이 마태복음 13장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세워지면, 신약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통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현재적 왕국으로서의 "하늘의 왕국"을 소유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 현재적 왕국에서 우리는 섬기는 일만 할 수 있고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 현재적 왕국에 참여 하고 있으며, 이 왕국은 구약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세워졌는데, 이 왕국은 씨를 뿌림으로써 곧 말씀이 전파됨으로써 세워집니다.

왕께서 멀리 떠나 계시는 동안 이 왕국이 사람의 손에 위탁됨에 따라 인간측면에서 볼 때 그 형상이 변화 무쌍하며 실패의 가능성이 있고,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며, 끝내는 심판으로 정결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왕의 부재 때문에 비롯된 것이지만, 이처럼 비밀스러운 형태가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하늘의 왕국의 독특하고 근본적인 특징입니다. 율법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겨졌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신실함과 순종을 요구하셨던 것처럼, 이제 은혜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맡기시고 동일한 신실함과 충성됨을 요구하신다고 볼 때, 오늘 우리 신자들이 가져야 할 책임감과 충성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왕국을 사람의 손에 맡기신 것은 사람의 뜻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에 따라 행하며 순복하는 책임있는 자리에 앉히신 것입니다.
7가지 비유 가운데 마지막 3가지는 결코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나타내며, 마침내 그분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실 것입니다.


, 이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을 최대한 간략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매우 방대한 내용을 짧은 글로 얼마나 정교하고 간결하게 담아낼 수 있을지주님의 은혜의 손길이 간절할 뿐입니다.
13장에서 다룬 비유는 7가지 입니다. 처음 두 비유는 씨 뿌리는 자와 알곡과 가라지인데, 이는 이 왕국은 주님께서 씨를 뿌림으로 시작되어,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면서 끝이 나는 일련의 신비스러운 왕국의 진행 과정을 예언적으로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 하늘의 왕국의 비밀스러운 형태를 끝 마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왕의 귀환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원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오래 전부터 포도를 심고, 울타리를 두르며 돌보아 왔습니다(마태21). 주님이 오셔서 열매를 바라셨지만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었습니다. 거절당한 주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셔야만 했으며, 좀더 넓은 세상의 밭에 씨를 뿌려 열매를 얻고자 하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해석해 주셨듯이, 밭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세상(마태13:38)입니다. 이 씨는 왕국 말씀(19)으로, 유대인의 왕으로서 거절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주님의 권능과 위엄으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씨를 뿌리는 일을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 자신이십니다. 씨를 뿌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씨를 뿌리는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 왕국은 사람들이 영접하도록 제시되었지만, 거절 당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만이 왕국을 소유할 수 있지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것(살후3:2)도 사실입니다. 현재적 이 왕국에는 본질적인 세가지 대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 육신,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씨가 열매를 맺는 일에 실패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씨를 뿌리는 일에 대한 공개적 반대도 있으며, 사람들은 외적으로만 말씀을 받아들이고 왕국의 외적 영역에 들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왕국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기독교계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아니, 정화가 필요한 이 기독교계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왕국의 모습인 것입니다.


1,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길가에 해당하는 사람
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뿌려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말씀이 뿌려졌다는 것 그 자체가 회심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말씀의 씨가 뿌려졌으나 말씀을 깨닫지 못할 때는 원수가 그 말씀을 가져 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에게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뿌려진 말씀은 그 사람의 영혼을 살리며, 그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있도록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 그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지적 인식이나 감정적 반응, 양심의 깨우침도 받지 못할 때 그 말씀은 마음에 뿌리를 내리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 쾌락 등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그러한 일들에 마음을 모두 빼앗겨서 좀처럼 영적인 것들에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뿌려졌다는 것은 진리에 전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더라도 어는 정도는 반응을 하는 사람일 수 도 있습니다. 문제는 빛이 있음을 알고도 의식적으로 빛으로부터 도망하려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어둠을 사랑하는 자요, 빛을 통해 드러난 자신의 악한 행위들을 그저 덮고자 하는 불신앙의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2) 돌밭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 들이지만, 길가의 예처럼 열매는 없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받아들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신앙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을 받아서 변화되지 않고 또 실제적으로는 말씀을 거부하는 돌 같은 마음을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 속에는 뿌리가 없고, 그리스도가 꼭 필요한 분으로 인식하지 못 합니다.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라 핍박이 올 때 넘어지는 자요, 잠시 견디다가 마는 자입니다.
(3) 가시 나무들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가 말씀을 막히게 하여 자라지 못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다른 말씀보다 더 엄중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예는 다른 경우보다 말씀이 더욱 깊이 자리를 잡은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돌밭 경우처럼, 믿음을 방해하는 외부의 핍박이나 환난이 없지만, 자신의 내면에 영향을 주는 세상의 영향력(염려, 재물)을 떨치지 못 하여 믿음이 무너지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4) 좋은 땅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 결실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 자신의 죄됨, 이러한 것들로 인해 자신에게 임할 심판과 절망, 나아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일 죄인이고, 나 자신의 힘으로 이 죄악과 그 심판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깨닫는다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이 구속이 얼마나 은혜롭고 큰 축복으로 임하겠습니까! 이 비유는 하늘의 왕국은 사람의 능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 들임으로써 세워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으로 거듭난 신자는 받은 생명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알곡과 가라지
마태13:24 그분께서 그들에게 다른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 25 그러나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자기 길로 가매

이 비유에서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곡식이 자라는 그 가운데 가라지를 뿌립니다. 원수가 뿌린 것은 알곡이 아니라 가라지(독보리)로 사탄의 교리를 가진 사악한 자들의 자손들(마태13:38)입니다. 좋은 씨는 결코 가라지를 낼 수 없으며, 가라지 역시 알곡을 낼 수 없습니다. 이 둘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원수는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그리스도의 역사를 허무는 일을 합니다. 밭에서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은 알곡만이 아니라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사탄은 항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비슷하게 흉내내 왔습니다. 그것은 모방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씨가 자라는데 아무런 방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가, 돌밭, 공중의 새들, 가시나무, 세상의 염려나 재물의 유혹 등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없고, 모든 환경이 씨에 유리하도록 작용하며, 결국 두 씨는 번성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독교계 역사를 볼 때, 매우 빠르게 진행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 영지주의, 기독교의 근간인 부활을 부정하는 교리 등 매우 다양한 거짓 교리들이 사도들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왕이 계시지 않는 동안의 왕국의 상황에서 잠입된 악들을 저지하진 못하더라도 신자들은 악을 치유하고 회복할 힘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추수할 때가 되어 왕이 개입하시기 전까지 이 모든 상황은 개선 되기 보다는 혼합된 상태로 존재할 것입니다. 이러한 왕국에서는 거듭난 주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거짓 형제들, 수 많은 이단들도 함께 존재할 것입니다. 아담이 그랬듯이, 인간의 손에 넘겨진 왕국은 구원 받은 신자라 하더라도 인간 스스로 순수하게 보존할 능력이 없음이 다시 한번 입증될 것입니다. 선한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발견됩니다.

(기독교계 가운데 계속되어 온 부패의 원인은 본 비유보다는 뒤에 다룰 누룩에 관한 것이므로 나중에 다시 살펴 볼 것입니다.)

가라지가 곡식과 함께 자라기 때문에 곡식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가라지를 뽑아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이러한 가라지를 뽑아 내는 것은 매우 선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처방은 "너희가 가라지를 모으다가 그것들과 함께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아니한 것들을 심판하는 일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 지식의 완전함과 그 무엇도/그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능력을 따라서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원수 갚는 일을 주께 맡기라고 하셨듯이 종들은 기독교계 안에 공존하는 가라지를 제거하는 일은 주의 종들의 일이 아닙니다. 이 일은 천사들의 손에 맡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분별해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그 사악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내쫓으라(고전5:13)” 강력히 요구한 일, 즉 악한 일을 저지른 누군가를 교회로부터 격리하는 문제는 다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가 아니라 왕의 부재한 상황 속에서의 왕국 즉 기독교계를 이야기 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주님의 이름에 모독을 가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기독교계 밖으로 나갈 수 없음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세상 끝날 때까지 공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추수를 기다리며, 수확 때가 되어 가라지는 불사르기 위해 단으로 묶고 알곡은 곳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엄중한 기독교계의 종말의 모습입니다. 알곡은 곳간으로 옮겨지지만, 가라지는 단으로 묶여 불사르기 위해 대기하고 있으며, 아직 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도 아님에 주목해 보십시오. 이 장면은 살전 4장에 소개된 주님의 공중 재림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살전4:16 []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오실 때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잠자고 있던 자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휴거 되어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는 말씀이 담고 있는 다양한 모습과 특징입니다. 모든 참된 성도들은 기독교계의 사방에서 나와 휴거 될 것이며, 가라지들은 불사르기 위해 밭에 여전히 남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서로 연합과 연맹을 이루겠지만 심판을 위해 따로 묶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 심판은 집행되지 않았고, 이들은 대환란에 념겨지며 남겨진 자들 가운데 구원 받을 자들도 일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부분 휴거설의 근거 구절로 삼기도 합니다. , 주님 공중 재림 때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들만 휴거 되고 나머지 성도들은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정결케 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곡식과 가라지가 다르다고 구분하고 있으며, 우리가 다 변화된다(고전15:51)고 말씀하시면서 부분 휴거설을 지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덜 익은 곡식을 가라지와 함께 단으로 묶이는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승천으로 인해 이 땅에 안 계시는 동안 인간의 손에 넘겨진 왕국의 모습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 마지막이 어떻게 종결될지를 간략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나머지 비유에 대해서도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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