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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2.

교회란(2) - 교회에 속한다는 것?


교회에 속한다는 것 하나됨의 실제적인 측면

앞선 글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곧 우주적인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 하나님의 처소(),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지역 교회)라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어떻게 형성된다고 공부했습니까? 고전12:13~14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 몸은 한 지체가 아니요 여러 지체이니라.

, 한 성령에 의해 침례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성령 침례 없이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광 중에 계시며, 그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이 땅에 있는 당신의 지체들과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성령 침례를 기름부음(요일2:20)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기름부음이 없이는 결코 교회에 속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할 수도 없습니다. , 기름부음은 교회에 속하는 가장 초석인 것입니다.

고전12:12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깨서도 많은 지체들을 갖고 있는데, 그 지체들은 바로 구원 받은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상에 있는 자기 백성을 나눌 수 없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한 성령에 의해서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생생한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리스도와 지상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은 하나의 몸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며, 그분의 살 중의 살이며 또한 그분의 뼈 중의 뼈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유기적인 연합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기적 연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왜 주님은 구원 받은 신자들을 이러한 연합 속에 거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1.     몸과 지체들은 머리가 주관하는 대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어느 지역에 사는 신자나 교회나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야 함을 의미합니다.

고전12:27에서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인데, 자기 백성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근거를 가지고 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모이든 성도들이 서로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인식 없이 모인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교회의 입장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지체에 대해 경솔하게 처신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을 것입니다.

지체라는 인식을 가질 때, 기꺼이 다른 지체들을 몸 안에 있는 존재로 생각하며 연약함을 도우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 사랑입니다.

우리는 마태25장에서 양과 염소의 심판을 통해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인 유대인들에게 잘 대해준 민족들을 잊지 않고 양의 민족으로 분류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피 값으로 산 당신의 지체들을 돌아 보는 일을 한다면, 주님은 얼마나 더 큰 보상으로 갚아 주실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모이고 있다면, 지체들이 가진 은사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 내용은 고전 12장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에 필요한 은사들을 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을, 병 고치는 은사를, 기적 행함을, 대언함을, 영들 분별함을, 방언과 통역을, 한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셨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자신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손일 수 없고, 모두가 발일 수 없습니다. 각 지체들은 교회에 필요하고 자신들의 역할(은사)를 발휘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한 지역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나타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라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일지라도 분명 주님께서 우리에게 담당하라고 주신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몸 안에 불필요한 것 같은 존재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손톱을 한 번 깎으면 안 자랐으면 좋겠는데, 귀찮게 계속 자라납니다. 그런데, 손톱이 계속 자라지 않으면, 손가락을 보호하는 기능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 몸 안의 장기들은 그 필요에 따라 머리카락이나 손톱처럼 계속 자라는 것들이 있고, 치아처럼 한번 자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연약해 보이는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우리게 유익이 되고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며,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각 지체는 다른 지체들의 유익을 위해서 꼭 필요하며,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 요긴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기 때문(고전12:24~25)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특징은,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며, 모든 지체가 저마다 독특한 직분이 있고, 전체 몸의 유익을 위해서 각 지체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만일 교회가 한 사람의 독단과 독재 아래 여러 지체들의 은사와 직분이 활용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몸의 하나됨을 부인 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 사람이 가진 탁월한 은사 때문에 일인 목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고의적이던 고의 적이지 않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일인 독재는 곧, 손 혼자서 발의 기능, 입의 기능, 귀의 기능, 눈의 기능을 모두 할려고 하는 것으로, 정말 어리석은 꼴이 되고 맙니다. 물론 그 한 사람이 받은 은사가 매우 탁월할 수 있으며, 매우 돋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으로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지체들은 각자가 받은 은혜를 따라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은사들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혼자서 모든 직분을 수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연약함을 보면서 난 은사도 없고, 내가 교회에서 담당할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적합하게 주신 은사들이 있습니다. 비록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말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은사가 교회 안에서 발휘되기를 소망합니다. 각 개개인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졌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면, 어떤 분은 봉사로, 전도로, 물질 지원으로, 기도로, 교제로, 가르치는 것으로, 구제로, 다스리는 자로, 긍휼을 베푸는 자로, 등등 다양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은사들은 자신의 삶을 부유케하고 자신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교회를 세우고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4: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에 속한다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주님께서 각인에게 은혜로 나누어주신 은사를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용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익 보다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님을 나타내는 데 활용된다는 것입니다. 집체적으로는 교회라는 모임을 통하여, 개별적으로는 각 개개인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지체로써 합당한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합당한 기능을 하는 것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별입니다.

3.     성별

고후11:2~3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3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주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시어 이 교회를 얻으셨는데(5:22~33), 자신의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하나님의 피(20:28)로 씻기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사신 이 교회에게만 하나님의 일을 위탁하셨는데, 세상에 속한 멸망 받을 혼들을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로 이겨 오도록 하셨으며, 구원 받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시켜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셨고, 성숙한 일군 곧 군사로 양육하셔서 마귀와 대항하여 싸우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어쩌면 성별의 역사였는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항상 마귀의 공격 대상이었고, 언제나 공격을 받아 왔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핍박으로, 때로는 달콤한 육신의 안락함으로, 때로는 인본주의적 사상으로, 때로는 오염된 교리로 교회를 오염시키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고, 지금은 이 모든 공격을 한꺼번에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참된 성도들은 이런 공격으로 교회가 오염될 때 마다 따로 나와 순결한 교회를 지키려고 했으며, 그 길에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를 태세로 타협하지 않은 무리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서는 교회의 성장과 선교라는 대의명분 아래 교회의 회원수 늘리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실제적 성별과 바른 말씀으로 양육하지 못한 탓에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이 사특한 이단이 호리는 사상에 걸려들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단순히 기독교계 안에 들어 와 있는지 아니면 정말 우리가 이 교회에서 배우고 있는 순수한 교리에 근거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자신을 먼저 검증하려는 시도를 해야 합니다.

요한 일서 2장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과 나간 자들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나간 자들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는 했어도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다고 요한은 진술합니다.

요일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나간 것은 그들이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음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그들도 한 때는 교회 안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모두 엉터리였던 것입니다. 함께 경배를 드리고, 주를 찬양했던 자들인데, 그들은 교회라고 하는 보이는 외형에는 속했는지 몰라도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자들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표현에 따라 그들에게는 기름부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속한 자들이 실제는 지체가 아니었던 이 예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정말로 참된 믿음을 소유 하고 있는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속하였다는 말이 확실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교회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하는 정도의 신앙을 말하거나 어느 날 또는 특정한 날만 충성되게 일하는 것을 의미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속했다는 것은 생명력 있게 교회와 유기적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참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은 먼가 특별한 것이 있으며, 동일한 생명을 소유했고 동일한 성령님 안에 있기 때문에 억지로 하나될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옛 본성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다면 육신의 소욕이 전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하더라도 가족과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안에는 그들 안에 무엇인가 내재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 암아 성령님 안에서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귀한 것이며, 유기적인 생명에 의해 결속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참된 교제를 나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다른 사람들과 느낄 수 없는 결속력을 느끼게 되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신자들 안에서는 이해되고 받아들여집니다.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교회가 바로 안식처요, 마음의 고향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 우리에게 속한자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결속이 바로 자신을 세상과 구별하며, 속된 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는 힘입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       나의 일상 생활에서 이런 것들을 느끼고 있나?

-       나는 이런 경험을 얼마나 하고 얼마나 생각하고 있나?

-       교회와 함께 할려는 태도는 어떠한가?

-       이런 일들이 나의 가장 중요한 핵심 자리에 놓여 있는가?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 같거나 자기와 다르면, 언제나 후다닥 달아날 것이다. 이런 자들은 성경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기준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검증하고 테스트해봄으로써 매우 견고한 터를 굳게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배도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복음주의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잘 못된 길을 걷고 있으며,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결된 유기적인 몸을 구성하며, 우리가 비록 시험을 받기도 하고 고난을 당해도 몸 안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위협과 고난이 아무리 커도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 없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분에게 속한 모든 사람은 그분의 영광의 몸, 즉 교회의 참된 신자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주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 밖에 있음을 보고 애통해야 하며, 또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악한 영에 끌려 가고 있는 사실에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교인 수에 욕심을 내어 아무나 교회에 가입시켜 우리가 가진 순수한 교리와 연합을 깨는 우를 범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 건전한 교리와 유기적 연합을 토대로한 성별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일서에 다루는 주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필수 요건들 중 하나입니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성경이 제시한 대로, 한 몸 안에서 지체로써 서로 섬기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으로 서로 격려하며, 마침내 주님 앞에 신실한 자로 드러나길 소망하며 주님께서 갈망하신 하나됨을 힘써 이루길 바랍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때로는 우리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질 때도 있고, 물질적인 손해가 따를 수 있고, 때론 주님처럼 고난을 당할 때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가 속한 곳이 어딘지, 우리의 신분이 어떠한 자들인지 상기하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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