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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1.

계시록 12장의 "사내아이"가 예수님인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사내아이"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이 사내 아이를 낳는 여자를 누구로 보느냐 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여자를 교회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한다는 주장을 펴게 되는데, 이것은 신약성도의 구원의 보장에 대한 교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1.계시록 12장의 시대적 배경

어떤 사람들의 해석처럼, 이 여자가 교회라면,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게 되며, 끝까지 견디고 이기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은 잘 못된 해석이다.

신약 성도는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신분적으로 이미 이긴자들이다.

 
(요일 4:4)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

 
또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산출하셨지, 교회가 그리스도를 낳은 것이 아니다. 신약 성도의 총체인 교회 곧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산출되었다. 따라서, 여자가 교회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12:1절의 해로 옷 입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한 참조 구절은 창37:5~11이다. 요셉의 꿈을 통해서 해와 달과 열두 별(요셉 포함)이 누구를 예표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이 여자는 이스라엘인 것이다.

 
41절에서, 교회의 휴거로 예표되는 "이리로 올라 오라", 곧 교회의 휴거 뒤에 5장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요한에게 보여 주신 준 것이다.

12장 역시, 미래에 있을 앞으로 일어날 일들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낳은 사내 아이를 예수님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수님은 2천년전에 성육신, 부활 승천하셨기 때문에, 미래에 다시 그런 사건을 겪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2천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십자가 구속 사건은 두 번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2. 사내아기가 예수님을 가리키는가?

과연 사내 아이(a man child)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아이(a child)와 같은가?

 
예수님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된 "아이(a child)"가 나오는 성경 구절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9:6)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9:6) For unto us a child is born, unto us a son is given: and the government shall be upon his shoulder:and his name shall be called Wonderful, Counsellor, The mighty God, Theeverlasting Father, The Prince of Peace.

 
(4:27)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며
(4:27) For of atruth against thy holy child Jesus, whom thou hast anointed, both Herod, and PontiusPilate, with the Gentiles, and the people of Israel, were gathered together,

 
반면, 12장의 사내아이와 관련된 구절은 이사야 66장에 나온다:
 

(66:7) 그녀가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자기의 고통이 임하기 전에 사내아이를 낳았으니
(66:8)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느냐? 누가 이러한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져서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도다.
(66:7) Before she travailed, she brought forth; before her pain came, she was delivered of a man child.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배교한 이스라엘에 요엘의 영이 부어져, 대환란기때 왕국복음을 전할 일꾼들을 하나님께서 하루 아침에 일으켜 세우실 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며 이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십사만사천이나 십사만 사천명을 포함한 유대인 환란성도일 것이다.

 
125절의 "채여 올라가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아니라, 환란 성도의 휴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4. 예수님의 승천인가? 환란성도의 휴거인가?

휴거에 사용된 용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2) I knew a man in Christ above fourteen years ago, (whether in the body, I cannot tell; or whether out of the body, I cannot tell: God knoweth;) such an one caught up to the third heaven.

 
(살전 4: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Then we which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shall we ever be with the Lord.

 
(12:5) 그녀가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더라. 그녀의 아이가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
(12:5) And shebrought forth a man child, who was to rule all nations with a rod of iron: and her child was caughtup unto God, and to his throne.

 
사도 바울이 세째 하늘에 올라가 낙원에 올라갔을 때도, 신약성도들이 휴거 될 때에도, 계시록 12장에서 사내아이가 하늘에 올라 갈 때도 모두 "채여 올라가(caught up)"와 동일한 방법을 통해서이다.

반면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는 "taken up"이란 문구로 기록되어 있다. 주님은 다른 누군가의 힘에 의해 채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기에 당당히 들어 가시며 당연히 받아들여지셔야 한다.

따라서, 125절은 환란성도의 휴거로 보이며, 휴거된 성도들이 계14장에 나온다. 125절을 환란성도의 휴거로 보지 않으면, 14장에 나오는 성도들이 언제 휴거된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 주님의 승천과 성도들의 휴거는 다르게 설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124절에서 "채여 올라가 하나님께 이르고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의영 어 표현을 보시면, "채여 올라가, 하나님 곧 그분의 왕좌에 이르더라" 이다. ", and""그리고"의 의미보다는 ", " 부연설명하는 것으로서, 그 사내 아이가 그분의 왕좌에 앉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왕좌에 가까이 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5. 이 아이는 철장으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자더라

이 부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으로 보는 것 같다.
철장으로 다스리는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들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시록 2장을 보라.

 
(2: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2:27)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산산조각 내리라. 이것은 곧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과 같으니라.

 
자세히 보시면 이기는 자들이 아니라, 이기는 자, 단수로 묘사하고 있다. , 이기는 자들을 하나로 묶어 집합화 하여 단수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을 다루면서 단수로 표현한 예들은 성경 여러 곳에 있다. 앞서 보았던, 이사야 66장의 사내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신약성도들도, 그리고 환란성도 가운데 이기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다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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