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딤전 3:16절에서 "하나님의 성품(경건)의 신비는 위대하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육체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이성으로 정확히 모두 이해 할 수는 없기에 신비라는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당신께서 만드신 작은 별, 지구에 오셨고, 그분이 만드신 태양은 그분의 머리 위를 내리 쬐었습니다. 그분이 만드신 비에 젖기도 하셨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그분이 때론 목말라 하셨고, 생명의 빵이신 그분이 때론 허기를 느끼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그분의 발이 지상의 먼지로 더렵혀 지셨고, 사람을 지으신 그분이 사람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만물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오셔서는 가난하셨고, 굶주리셨습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은 모두 우리(나)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아버지께 데려 가려고 주님은 내려 오셨고, 나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주님은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습니다. 나를 아들 되게 하시려고, 주님은 종이 되셨고, 나를 부요케 하시려고 주님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나에게 하늘 처소를 주시려고 주님은 이 땅에서 집이 없으셨고, 나를 배부르게 하시려고 주님은 굶주리셨습니다. 나를 마시게 하려고 주님은 목마르셨고, 나를 아버지께 받아들이게 하시려고, 주님은 버림을 당했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시려고, 주님은 슬픔을 당하셨고, 나를 복되게 하시려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나를 낫게 하시려고 주님은 채찍에 맞으셨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주님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바라보며 생각할 때, 비록 내게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도 힘을 얻고 일어 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모든 일들이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압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듯이,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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