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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15.

간증을 바라보는 개인적 견해


바쁘게 살다 보니 글을 올리는 것이 쉽지가 않네요.
전부터 계속 올리고 싶은 글이 있었는데, 오늘 시간이 좀 나서 적어 봅니다.

모 교회에서 떠나 온지 벌써 1년 반정도 정도 시간이 지났네요. 지난 1년 남짓 시간을 보내면서 모 교회에서 나온 분들이 다른 모임에 잘 적응하지 못 하는 것을 보면서,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원인을 저 나름대로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원이 있겠지만, 제가 느낀 바는 그 단체에서 잘 못 배운 신앙 때문이며, 구체적인 것들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사사로운 생각입니다:

1. 우리 만큼 성경을 많이 아는 곳은 없다우리 만큼 복음을 전하는 곳이 없다는 세뇌의 잔상이 깊이 남아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잘 경청하지 못함. - 나도 당신 만큼 알고, 알만큼 안다는 생각을 깔고 듣기 때문...

2. 우리 말고는 다른 곳은 교회가 아니다는 잘 못된 관념

3. 교리, 지식 보다는 실제 삶 속에서 하나님이 도우신 간증을 듣는 설교에 익숙해져서 하나님 말씀만 제시하는 설교는 이론이고 지식일 뿐, 참 신앙이 아니라는 잘 못 된 생각

4. 제시되는 말씀보다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 앞에 해왔던 잘 못된 신앙 습관

5. "마음 꺽어라" 들으면서 보이는 사람(목사)앞에서는 꺾는 훈련이 되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꺾는 훈련이 안된 신앙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이들 중에서 오늘은 설교하면서 섞는 "간증의 위험성"에 대해 제 생각을 올립니다.

그 단체에 오래 다니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단체의 수장께서 자주 했던 간증 중 하나가 초창기 때 교회 전세금을 떼이고 돈이 없고 갈 곳이 없었을 때에, 교파 교회의 장로님 소유인 2층 집을 보고 찾아가서 "나는 하나님의 종인데, 하나님이 이 집을 내게 주셨다"고 하면서 공짜로 쓰게 해달라고 해서 그 집을 얻은 간증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이 간증을 들으면, 정말 불가능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이고, 구원 받은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하면서 은혜 스럽게 들리지 않았던 가요? 그러면서, 이런 일들이 내게도 이루어져서 멋드러지게 회중 앞에서 간증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담도 없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존재로 인식이 됩니다.

여러분은 이 간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도우셔서 주신 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수장은 자신은 당당하고 믿음 있는 자이고, 그 집주인 장로는 구원도 못 받은 죄인이고 신앙도 없는 자처럼 묘사합니다. 이러한 것이 진짜 믿음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런 간증을 다른 각도에서도 보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에 구원 받은 신자의 삶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신 목적은 단순히, 하나님을 이용하여 우리 죄나 처리하고, 우리의 욕구를 들어 주시는 해결사로 하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런 것은 값싼 은혜요, 어린 아이일 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완전함을 향한 부르심(6)이요, 선을 행하는 독특한 백성을 삼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르셨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고, 주님을 위해, 주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영광스러움에 초대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 장로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가 장로이기 때문에 적어도 장로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도덕적 수준에서라도 알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 온 손님을 대접(1:8 감독의 조건 중 손님 대접하기를 잘 해야 하는 것이 있음)해야 함을 알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장로님은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기에 불편함과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그 수장에게 선뜻 집을 내어 준 것입니다. 수장이 믿음으로 취했다기 보다는 그 장로가 구원을 받았던 안 받았던 그가 믿는 바 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 수장에게 선을 베푼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장로님이 그 수장보다 의롭고 선을 행했기에 그 장로님을 존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로는 구원 못 받은 죄인으로 매도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당기는 능력의 종으로 묘사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간증의 목적은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정통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런 사사로운 간증을 설교 시간에 철저히 배제시킵니다. 이런 간증은 매우 사적이고, 자의적 해석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한 말씀과 섞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간증이 필요할 경우는 사적인 자리나, 자유로운 교제 가운데 하면 족할 것입니다. 예배에서는 오직 주님만 홀로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언제가 한번은 제가 속했던 지역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담임 목사가 학생 형제에게 3만원을 주면서 오늘 컴퓨터 기사가 와서 컴퓨터를 고치면 꼭 3만원만 줘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출타하고 없을 때, 컴퓨터 기사가 와서 컴퓨터를 수리하고 갈 때 수리비가 5만원이니 5만원을 달라고 했고, 학생 형제는 우리 목사님이 3만원만 주라고 했다면서 3만원만 주었습니다. 한참을 실갱이 하다가 그 기사가 투덜거리고 화를 내면서 갔습니다. 일요일에 그 학생 형제가 나와서 간증하길 목사님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컴퓨터 기사가 3만원만 받고 갔다고 은혜롭다면서 간증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목사님을 통해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간증이 그 때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억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가 컴퓨터 기사였다면, 나는 정당한 일을 하고도 합당한 댓가를 받지 못 했기에, 난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 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비슷한 류의 간증을 열거 할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류의 대부분 간증은 하나님을 따랐더니 이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 것이 바로 이기적은 은혜요, 주관적인 은혜일 뿐, 하나님과 관련이 없고, 이렇게 불의한 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도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음 성경 구절이 생각납니다:

딤전6:5 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손해를 보며, 양보하며 덕을 베풀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고, 우리의 진정한 소유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이러한 필요를 얻는데 주님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주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고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이득이 생기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손해를 보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저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무척 좋아 했습니다. 그가 죽게 된다는 대언자의 말을 들었을 때, 금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구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줌은 물론이고, 증표로 해를 뒤로 움직이는 놀라운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기도라고 믿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간증을 합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주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이 말씀이 종종 내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왜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오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므낫세의 출생을 막기 위함입니다. 므낫세는 역대 가장 악한 왕이었고, 얼마나 악했는지 하나님은 므낫세 때문에 이스라엘을 멸망시킨다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므낫세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히스기야가 일찍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모두 한 후에도, , 우리의 필요나 염원을 주님께 다 고 한 후에, "우리의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 대로 하옵소서" 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신자(=교회)는 이 어두움의 세상에서 주님의 빛을 드러내는 기관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사로운 욕망의 성취보다 주님의 갈망에 초점을 맞추었는지를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 중에 이런 간증이 없더라도, 설교 중에 제시되는 순수한 말씀에 내 상태를 비춰보고 그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드러낼 때,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깊이 주님을 맛보고 경험 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좋은 간증은 다른 형제 자매님들에게 많은 유일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간증이 유익보다는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측면을 생각해 본 것이고, 비록 모임의 형태가 달라도 각자가 있는 지역에 건전한 교회가 있다면, 함께 못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간증하는 자가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마귀의 밥이 되어 영광의 주인공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세우게 되므로 주의 하자는 의도입니다. , 반드시 내게 경제적 이득이 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닐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사적 견해였으며, 각자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 구상했던 것처럼, 잘 정리가 안되었지만, 함께 의견을 나누고자 올립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건전한 영적 성장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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